디즈니는 OTT 서비스가 중심이 되기 이전 가장 강력한 콘텐츠 IP 전략을 전개하는 기업이었다. IP 전략 측면에서 디즈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팬덤 기반이 강한 소위 ‘슈퍼 IP’를 보유한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인수, 합병하여 거대한 IP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는 것과 이를 체계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IP 비즈니스 생태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디즈니는 루카스아츠(Lucas Arts Entertainment Company) 인수를 통해 스타워즈 IP를 확보하고, 코믹스 IP를 대거 보유한 마블(Marvel)과 픽사(Pixar)의 인수를 통해 3D 애니메이션 IP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 외에도 다수의 기업을 IP 강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인수하여 거대한 팬덤을 거느린 IP를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렇게 확보한 IP는 디즈니가 보유한 방송, 영화와 같은 미디어 기업과 더불어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와 관련 MD상품 판매, 뮤지컬 공연 등 다양한 장르 및 산업 확장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미디어 복합 기업으로서 디즈니의 총체적 IP 전략은 많은 기업의 참고 대상이자 최종적인 목표로 자리잡고 있었다.
디즈니의 IP 전략에 있어서 OTT 서비스가 갖는 위치는 이러한 IP 생태계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특히 디즈니플러스는 코로나 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즈니 IP 전략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는 변화를 겪고 있다. 기존의 디즈니 작품들을 하나의 서비스에 집중시키고, IP 팬덤의 관심을 지속해서 환기하는 수단으로서 OTT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디즈니는 자신의 IP의 팬덤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OTT의 위치를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디즈니는 글로벌 IP 전략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영화를 가장 중요한 전략 수단으로 활용했다. 개별 영화 작품들을 서로 연계하여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는 영화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IP 전략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디즈니는 일정한 주기의 개봉 기간을 바탕으로 작품을 연계하고 홍보하며, 관련 VOD 판매와 상품 연계를 전개하는 체계적인 방식을 통해 지난 몇 년 간 극장 산업을 주도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극장 중심의 IP 전략이 코로나 19로 인해 어려움에 빠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디즈니랜드와 같은 오프라인 기반의 테마파크 전략은 팬데믹 기간 중오히려 사업적인 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디즈니플러스가 첫 작품으로 <만달로리안>이란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프를 선택한 것은 이들이 IP 전략에 있어서 OTT에 어떠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디즈니는 지속해서 IP를 모으고, 다시 만들고, 확장하며, 연결해왔다(이성민, 2017). 디즈니는 영화 중심의 세계관 전개가 가질 수 있는 흥행의 리스크를 안정적인 구독 기반 OTT를 통해 해결하면서, 팬덤의 지속적인 관여(engage)를 높일 수 있는 팬덤 플랫폼(이성민, 2020b)으로서의 역할을 디즈니플러스에 맡기고 있다. 디즈니 IP의 세계관을 온전히 누리고자 하는 팬덤이라면, 디즈니플러스의 구독을 포기할 수 없다. 이는 최근 한국의 주요 아이돌 셀러브리티 IP의 팬덤 플랫폼을 표방한 위버스(Weverse)나 유니버스(UNIVERSE)와 같은 서비
스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되는 전략이기도 하다. 디즈니플러스 없이는 디즈니 유니버스의 온전한 일원이 되기 어렵게 된다. 즉, 디즈니플러스는 디즈니의 IP 생태계를 온전히 즐기기 위한 팬덤을 위한 일종의 ‘여권’이 되고 있다.
OTT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의 IP 전략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현재 미국 현지에서 가시화된 ‘팬덤 플랫폼’ 구축 전략이고, 두 번째는 해외 진출을 위한 현지화 전략이다.
1) IP 팬덤 플랫폼의 구축 전략
먼저 콘텐츠 IP 단위의 세계관 연계의 거점으로서 디즈니플러스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완다비전(Wanda Vision)>과 <팰컨과 윈터솔져(The Falcon and the Winter Soldier)>는 디즈니 IP 전략의 대표 주자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새로운 페이즈(phase)의 문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앞서 3번의 거대한 연계 시리즈의 단위인 페이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바 있다. 개별 히어로의 이야기를 담은 단독 영화를 통해 세계관의 연계 지점들을 구축하고 그 결과물을 <어벤져스(Avengers)> 영화를 통해 종합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그동안 이러한 연계의 전략은 주로 영화를 통해 전개되어 온 것이 특징이었다. 기존에도 <에이전트 오브 쉴드(Agents of S.H.I.E.L.D.)>와 같은 드라마 시리즈가 존재했지만, 이들은 전체 세계관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기 보다는 스핀오프 형태의 부가적인 콘텐츠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에 디즈니플러스를 통해서 공개한 완다비전에 사람들이 주목한 이유는 공식적인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의 4번째 페이즈의 시작을 여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완다비전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서사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공개된 세계관의 요소들이 이후의 페이즈4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임이 확실히 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기존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팬덤은 직접 디즈니플러스에 가입해서 해당 내용을 확인하고 즐기고 있으며, 디즈니플러스에 직접 접속할 수 없는 미진출 국가의 팬덤들이 관련 정보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상호 공유하고 토론하고 있다.
기존에도 이러한 세계관 연계 전략은 영화 개봉 이후의 VOD의 지속적인 매출을 견인하고 ‘팀-업(team up)’ 영화인 <어벤져스(The Avengers)>의 흥행 규모 증대에 기여해왔다. 다만 이러한 VOD들은 개별 미디어 플랫폼들로 파편화되어 있었고, 팬들의 활동도 다른 커뮤니티 등으로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 기반의 분석을 쉽게 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디즈니플러스 출범과 함께 디즈니는 이렇게 흩어져 있던 기존 작품들의 서비스 권한을 회수했고, 온전히 자신의 플랫폼 위에서 연계 소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OTT의 추천 시스템은 이러한 연계 전략을 돕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하나의 작품을 시청한 이후 연계 작품을 추천할 수 있다는 점은 다수의 ‘레거시 IP’를 보유한 디즈니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기존에 축적된 ‘홈 비디오’ 시절의 작품들과 극장 개봉작 중심의 레전드 작품들이 상호 연계되어 소비될 수 있게 한다. 이제 디즈니 IP의 팬덤은 디즈니플러스에서 신작과 구작을 끊임없이 연결해서 시청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연계 소비의 데이터는 디즈니의 IP 전략을 위한 자원으로서 축적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소비 데이터를 기반으로 후속 작품의 기획과 연계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마블뿐 아니라 기존의 디즈니가 보유한 IP 간 연계 및 활용 전략 역시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보다 정교하게 조직화되고 있다. 앞서 제시한 <만달로리안>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IP 연계에 있어서 영화 중심의 전략이 가진 흥행 위험과 서사 연결의 한계를 드라마 시리즈를 통해 극복하는 전략이 가장 대표적이다. 기존에 디즈니는 영화 중심의 핵심 서사 구축이 성공하면 이에 대한 ‘홈 비디오’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했던 적이 있다. 기존에 철저히 영화-비디오-테마파크로 이어지는 위계적 경험 구조를 지켜왔다면, 이제 OTT 우선 전략을 통해 IP 세계관의 핵심 서사를 경험하는 순서를 바꾸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현지화 전략의 정교화
디즈니플러스는 북미 지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에 이미 진출했으며, 2021년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으로의 본격적인 진출이 계획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서비스 지역 확대를 위해 현지화 전략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는 디즈니의 IP 전략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디즈니는 OTT 서비스 이전에도 지속해서 콘텐츠 소비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현지화 전략을 고민해왔다. 기존의 현지화 전략의 특징은 특정 지역의 문화 요소를 차용한 하나의 서사를 만들되, 기존 디즈니 작품들과의 일정한 형식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었다. 예를들어 ‘뮬란’의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는 모두 중국 및 아시아 시장에 대한 현지화 전략이 담겨 있으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프렌차이즈가 공유하는 서사 전략들의 틀 안에 포함된다. 여주인공 뮬란이 ‘디즈니 프린세스’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2021년 개봉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Raya and the Last Dragon)>은 아세안 지역의 문화요소를 다수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디즈니 프린세스’라는 IP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디즈니식 현지화 전략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디즈니 IP의 유니버스에 특정한 문화권의 배경을 가진 인물을 추가하고 관련 서사를 늘려가는 방식이다.
해당 작품이 아세안 지역으로의 디즈니플러스 서비스 진출을 앞두고 기획된 작품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OTT 현지화 전략에서도 기존의 IP 연계 현지화 전략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 진출을 앞두고 한국에서 제작한 드라마와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일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아시아에서의 성공에 한국 드라마의 기여가 높았다는 인식에서 디즈니도 현지화를 위해 한국 콘텐츠 제작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는 자체 IP 기반의 팬덤 플랫폼이라는 디즈니플러스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다소 의외의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진행한 루크 강(Luke Kang) 월트디즈니 아시아태평양 총괄사장의 인터뷰 내용에는 흥미로운 언급이 담겨 있다(중앙일보, 2021.3.24.). 웹툰 등을 원작으로 한 한국 드라마는 ‘스타(Star)’라는 콘텐츠 브랜드의 일부로 디즈니플러스에 담기게 된다는 것이다. ‘스타’는 훌루(Hulu)의 글로벌 버전으로, 디즈니 산하 스튜디오의 프로그램들이 포함되게 된다. 디즈니가 최근에 인수한 20세기 스튜디오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출처: The Walt Disney Company (2021.2.23.)
디즈니는 지속해서 인수합병 등을 통해 IP 유니버스의 범위를 넓혀왔다. 이들 중 온전히 디즈니의 세계에 정착한 것들도 있지만, 아직 여전히 체계적인 발굴과 관리가 필요한 IP의 원석들도 존재한다. ‘스타’라는 카테고리가 디즈니플러스의 현지화 전략의 일부로만 남게 될지, 보다 전략적인 IP 전략의 자원으로 활용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디즈니가 스트리밍 기반의 글로벌 진출 전략을 더욱 정교화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현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라는 형태로 IP 확보 전략을 시작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