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는 것은 데이터(Data), 네트워크(Network), 인공지능(AI), 즉 DNA다. DNA에서도 네트워크는 인프라 중 인프라로 가장 근간이 되는 기술이다. 5G는 빠르게(초고속), 실시간(초저지연)으로 대용량 데이터와 모든 사물을 연결(초연결)시키는 4차 산업혁명 핵심 인프라로, 앞으로 우리가 경험할 스마트시티, 자율자동차, 가상현실 등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의 혁신 기술은 모두 5G를 전제로 한다(정동훈, 2021a). 3G로 인해 스마트폰이, 4G로 인해 유튜브와 같은 OTT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처럼, 5G 역시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서비스를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5G 상용화에 따른 킬러콘텐츠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역시 실감 미디어(Immersive media)다. 실감 미디어란 말 그대로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을 주는 미디어, 즉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실제로 느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미디어를 말한다(정동훈, 2017). 실제로는 스마트폰이나 HMD와 같은 미디어를 사용하지만 마치 그냥 현실에서 느끼는 것처럼,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사용자가 진짜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진짜라고 느낄 수 있어야 실감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실감 미디어는 어느 때고 존재했다. 실감나게 느낀다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시집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면 시집도 훌륭한 실감 미디어다. 사춘기 때에는 특히 감정이 예민해지기에 같은 미디어라도 더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똑같은 미디어를 사용하더라도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따라서 실감 미디어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때고 존재했던 실감 미디어지만, 최근 실감 미디어와 실감 콘텐츠를 더욱 강조하는 이유는 진짜 같은 가짜가 실제보다 더 현실같이 구현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 제작 기술의 발전은 현실과 가상의 경험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가령 TV의 경우, 흑백TV에서 컬러TV로, 그 이후로 HDTV, 3DTV, UHDTV로 발전하고, 극장의 경우 3D, 4D, IMAX, 4D IMAX로 발전하는 것이 한 예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감나다’라는 느낌은 단순히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특정 감각의 극대화가 아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보고, 듣고, 만지며, 냄새를 맡고, 맛보는 종합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정동훈, 2017). 그래서 실감 미디어는 실제 느낌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특히 인간의 다차원적 감각, 즉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개발되어야 한다. 최근에 실감 미디어를 새삼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해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경험을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과 같은 깊이감을 제공함으로써 3차원 효과를 일으켜야 하고, 청각은 360도 스테레오 사운드를 제공해야 한다.
출처: Somnium Space and TESLASUIT(https://youtu.be/1BJXHMmpsWI)
시청각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촉각과 후각적 경험으로 확대하는 것도 숙제다. 장갑과 수트를 통해 전달되는 촉각적 반응을 경험하게 하고, 상황에 맞는 냄새를 제공해서 실제처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즉, 실감 미디어는 사용자가 미디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조차 잊을 정도로 실감이 나게 만들어야 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함과 동시에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속성을 잘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실감 미디어의 특징 때문에,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실감 미디어 연구자로서 걱정과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메타버스가 가진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또한,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은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한 세계관을 가질 것이라는 예측이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문제는 그리고 핵심은 ‘시간’이다.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한때 3D 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예측했고, 포켓몬고 때문에 혼합현실이 금방이라도 거대 산업이 될 것으로 보였다. 가상현실은 어떤가? 마치 내일이라도 가상의 세계가 펼쳐질 것처럼 얘기한 게 벌써 몇 년 전인가?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2021.07.24.)
실감 미디어와 관련하여 메타버스에 대해 우려가 되는 이유다.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에서 그리는 오아시스가 펼쳐지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뉴스나 기업에서 당장에 적용될 것 같이 말하는 기술을 사용자가 기꺼이 사용하기에는 감당하지 못할 큰 장벽이 있다. 몇 가지 사례로 현혹하는 현상에 속지 말고, 당장 사용자 경험을 충족시킬 수 있는 현재의 기술 기반 미디어와 콘텐츠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제페토(Zepeto)를 비롯한 메타버스의 대표적 사례를 얘기하는 대부분 플랫폼에서 사용자는 아바타(Avatar)를 통해 존재한다. 아바타를 움직이기 위해 사용자는 스마트폰에서 왼손으로 방향을 조정하고, 오른손으로 점프를 하거나 특정 행동을 한다. 컴퓨터에서는 마우스로 움직이고, 키보드를 조작한다. 적어도 이와 같은 사용자 경험으로 메타버스의 미래를 이야기하기에는 그 수준이 너무 낮다.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HMD)를 끼고 양손에는 콘트롤러나 촉각(Haptic) 인식 장갑을 끼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한, 메타버스를 넥스트 인터넷으로 간주하기에는 사용자 경험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실감 미디어의 시대라고 해서 가상현실과 혼합현실, 홀로그램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메타버스의 시대라고 해서 메타버스의 정의도 내리지 않은 채 제페토나 로블록스(Roblox),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와 같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필패 전략이다. 사용자는 다양한 이유로 현재의 미디어를 대체하거나 병행한다. 단지 기술의 진보가 사용자를 이끌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분히 현상만을 보는 편협한 시각이다. 가상현실 기기를 꾸준히 사용해보지도 않고, 오큘러스 퀘스트2(Oculus Quest 2)의 판매량 때문에 가상현실 산업이 곧 주류가 될 것처럼 소개하는 뉴스 기사나, 새로운 기술이 소개되면 언제나 그렇듯 몇몇 독특한 사례 때문에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테크 사업자와 언론사의 선동이 야속하다.
기술적 요소가 실감 미디어를 좌우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여전히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고, 사용자 경험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실감 미디어 시대에 영상 산업 전반의 플로우를 바꿀 수 있는 기반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리얼타임 렌더링(Real Time Rendering), 즉 게임엔진의 예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