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글로벌 스트리밍 사업자들을 겨냥한 유럽의 콘텐츠 할당 의무 규제는 전통적인 텔레비전 채널에서 방송되는 콘텐츠의 절반 이상이 유럽산(産)이어야 한다는 오랜 규정과 마찬가지로 유럽 콘텐츠에 대한 보호를 전제로 한다. EU 국가에서 스트리밍 사업자들이 콘텐츠 의무 비율을 맞추는 것은 물론 수익의 일정 비율을 직접 재투자하고 더 나아가 비즈니스 모델을 규제할 수 있도록 국가별로 맞춤형 법률 제정이 허용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이런 환경에서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이 앞으로 유럽 콘텐츠 할당량을 충족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 규제 당국이 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유럽 콘텐츠’의 범주에서 영국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제외하는 것을 고려 중이기 때문이다.
향후 수년 내 이러한 논의가 현실화 된다면, 넷플릭스의 히트작 <크라운(Crown)>과 같은 콘텐츠가 더 이상 유럽 할당량에 포함될 수 없는만큼 영국이 아닌 다른 EU 회원국가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라고 해도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았다면 유럽산으로 인정되지 않는 만큼 최소한 현지 제작사와의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하는 제약이 있다.
수익의 일정 부분을 유럽 콘텐츠에 투자해야 하는 의무 역시 사업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프랑스 입법부는 프랑스에 진출한 글로벌 스트리밍 사업자들이 유럽 및 프랑스의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수익의 20~25%를 할당하도록 했으며 2021년 6월 23일 관보를 통해 해당 법령을 공식 발표했다.
새로운 법령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개봉 12개월 이내인 장편 영화를 연간 1편 이상 방영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는 연간 수익의 25%를 프랑스 현지 콘텐츠 제작에 투자해야 한다. 또한 개봉 후 12개월 이내에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서비스 사업자는 수익의 20%를 유럽 작품에 할당하도록 의무화했다. 특히 유럽 콘텐츠 제작에 할당된 금액 중 40%는 오리지널 프랑스 콘텐츠 제작에 사용하도록 했다.
스트리밍 콘텐츠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규제
1는 순기능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글로벌 사업자들의 막강한 시장 지배력으로 인해 특정 지역과 언어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에 과도하게 쏠림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리투아니아나 폴란드 등 시장 규모가 작은 국가의 경우 아예 자국 콘텐츠의 제작 동력이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한 것도 사실이다.
-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멕시코 상원은 2020년 3월 OTT 콘텐츠 중 자국 콘텐츠의 비중이 30%를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규제안을 승인한 바 있다. 이 규제안은 디지털 플랫폼에 관한 연방방송통신법(LFTR) 개정안의 일부이며, 콜롬비아에서도 비슷한 법안 논의가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같은 거대 글로벌 스트리밍 사업자들로서는 최대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로비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불가피해진 규제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방안을 마련하고 더 나은 콘텐츠 발굴 기회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