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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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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블러 시대, 미디어 산업 트렌드 변화 ]

흐려지는 경계, 불거지는 형평성,
새로운 질서를 향한 움직임

김광재
(한양사이버대학교 광고미디어학과 교수)

  • 새로운 해가 열렸다. 여느 때처럼 전환기를 맞아 시장과 산업 지형의 변화를 점쳐보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고 있다. 익숙한 의례처럼 우리는 각종 진단과 전망에 동의를 보내기도 하고, 새로운 현상에 대한 기대를 비추기도 한다. 미디어 시장과 산업에 대한 진단과 전망 역시 잇따르고 있다.미디어 지형이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는 탓이다. 바라보는 관점, 주목하는 현상에 따라 국내외 주체별로 내놓고 있는 결과물은 무척 색다르다. 하지만 주요 키워드로 정리돼 전달되는 형식만큼은 유사하다. 다양한 키워드들이 제시되고 있음에도 이를 필자의 관점에서 분류해 보면, 크게 세 가지 범주에 넣어볼 수 있었다. 흐려지는 경계, 불거지는 형평성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움직임이다. 각 범주 속에 내포된 내용과 의미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 1들어가며
    수 년여에 걸쳐 첨단 기술에 의해 촉발된 미디어 시장의 확장성은 주목의 대상이 돼 왔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촉발된 뉴노멀(New Normal)은 미디어 시장의 융합 현상을 가속화하며, 시장 이해관계자들이 적응할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변화의 속도가 가파름을 탓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미디어 시장의 재편을 바라보며 변화 속 패턴을 읽어내기에 급급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지표는 줄고, 예측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지상파방송 사업자의 부침, 유료방송 사업자 간 경쟁 구도의 변화, 콘텐츠 사업자의 위상 제고, 이커머스 영역의 방송콘텐츠 화(化), OTT(Over the top)의 시장지배적 지위 획득 등은 불과 지난 2~3년여 사이에 급격히 진행된 대표적 변화들이다. 이로 인해 규제와 비규제 영역을 구분 짓던 획정의 논리는 힘을 잃고 미디어 혹은 방송사업자의 정의는 새롭게 쓰이길 요구받고 있다.

    시장변화가 가파른 가운데 불거지는 볼멘소리들은 시장 그리고 정책의 형평성 제고를 요구 하는 목소리로 모이고 있다. 시장과 사업자를 구분 짓고 제각각의 역할과 의무를 부여하던 기존의 정책 논리가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만이 이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미디어 정책을 고도화하고 있는 거의 모든 국가가 함께 앓고 있다. 저마다의 대처 방식이 다를 뿐이다.

    2022년은 정책당국과 시장 이해관계자들이 이와 같은 혼미스러운 상황을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기존 사업자를 중심으로 유리한 정책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정치적 지형의 변화 시기가 맞물려 있는 것 역시 새로운 질서를 향한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흐려지는 경계, 불거지는 형평성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움직임 등 세 가지 변화의 흐름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뤄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흐려지는 경계
    미디어 시장 혹은 사업 영역 간 경계의 희미함을 언급하기 위해 과거 우리가 흔히 차용했던 사례는 유사한 수익 모델을 지닌 신구 사업자 간 경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들이 서로 과도한 시장 행위를 벌이다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였다. 예를 들어, 케이블TV와 위성방송 사업자가 선점하고 있던 유료방송 시장에 서비스 모델이 유사한 IPTV 사업자가 등장, 다채널사업자 간 시장 잠식 경쟁이 가속화되는 경우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상파방송 사업자가 주도하던 콘텐츠 제작 및 공급 시장에 대기업 계열 콘텐츠 제작 및 공급 사업자가 등장하거나 혹은 종합편성채널 사업자가 등장해 콘텐츠 제작 시장과 시청자를 나눠 갖는 양상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 사례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사업자 간 힘의 균형이 다소 쏠릴지언정 한쪽으로 완전하게 치우치진 않는 경우들이다. 시장 잠식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기존 사업자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기존 사업자들도 힘의 한 축을 유지한 채 제법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둘째, 대부분 유사한 수익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는 사업자 간 경쟁에 국한된 양상이었다. 따라서 이익침해 영역에서 발생한 수익의 적정 배분이 사업자 간 쟁점이 되었을 지언정, 사업자들이 자신의 수익 혹은 사업 모델 전체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을 맞지는 않았다. 시장에 진입한 배타적 사업권을 쥔 이해관계자들만의 리그였다는 의미다. 흐려지는 경계에도 불구하고, 사업 면허에 기반을 둔 시장 획정 방식은 그래서 여전히 미디어 시장을 이해하는 유효한 구분법이 될 수 있었다.

    넷플릭스(Netflix)를 필두로 한 OTT의 급성장은 그러나 시장 내 경계 허물기를 과거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가속했다. 국내 OTT 이용률은 2017년 36.1%에서 2020년 66.3%로 폭증했고, 매출액 역시 2014년 1,926억 원에서 2020년 7,801억 원 그리고 2021년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기준 국내 OTT 시장 점유율을 보면 Netflix 40%, 웨이브 21%, 티빙 14%, 시즌 11%, U+모바일 9%, 왓챠 5%로 글로벌 OTT 기업은 이제 국내 방송 미디어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Statista, 2021).

    글로벌 OTT 사업자는 단순히 시장의 메기 역할만을 한 게 아니었다. 지상파방송, 유료방송, 콘텐츠 제작 사업자 등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시장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는 방송사업자의 경영성과, 콘텐츠의 생산, 유통 그리고 소비자의 미디어콘텐츠 소비방식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질서 혹은 문법으로 불리던 관행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상 콘텐츠 시장은 확장됐지만, 시장 내 플랫폼의 지위를 가졌던 다수의 이해관계자는 혼란에 빠져드는 상황이었다.

    관건은 OTT 사업 영역이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하며, 영향을 넓혀가는 상황에선 사업자 간 경계는 지속해서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글로벌 OTT 사업자의 약진에 자극받아 국내 전통적 방송 통신 사업자들까지 OTT 시장 확보 경쟁에 참여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경계는 단순히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수 있다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특히 비규제 영역에서 수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미디어 사업자들이 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것은 이와 같은 분위기를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 3불거지는 형평성
    2019년 하반기만 해도 영상 콘텐츠를 활용한 전자상거래 모델인 ‘라이브커머스’는 시장에 그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우려의 목소리만 간헐적으로 제기됐었다. 규제 형평성이었다. 라이브커머스를 펼치는 사업자들의 서비스 모델과 방식은 언뜻 봐선 방송기반 미디어커머스 사업으로 인식되는 홈쇼핑방송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외형적으로 방송플랫폼 사업자를 경유하지 않고, 콘텐츠를 송출하면서 상품 판매 등 커머스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커머스 시장의 경쟁이 홈쇼핑방송 사업자로 한정된 방송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커머스가 발생하는 오픈마켓으로 확대된 양상이었다. 이로 인해 홈쇼핑 방송 사업자의 시장 내 배타적 권리는 점차 그 실효성을 의심받게 됐다. 사업자들의 시선은 이제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시장의 규칙 혹은 규제가 공정한가로 모아지고 있다(김광재, 2020).

    표 1 미디어 기업 간 주요 분쟁 사례

    OTT는 사업자 간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OTT 사업자들이 시장의 과실을 대거 취하면 서도 의무를 부과받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규제로부터도 상대적으로 높은 자유도마저 구가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2019년 이후 불거진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콘텐츠 대가 산정 분쟁, CJ ENM과 IPTV 사업자 간 프로그램사용료 분쟁, 유료방송사업자와 홈쇼핑 사업자 간 송출 수수료 분쟁 등은 얼핏 보면 OTT와 상관없는 듯하지만 실상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의 국내 미디어 시장 진출에 따른 변화로 촉발된 갈등이었다. <표 1>은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 지난 3년여에 걸쳐 발생한 주요 분쟁 사례를 정리한 것이다.

    이종관(2021)은 방송미디어 시장의 다양한 주체들 간 전개되는 분쟁과 관련해 세 측면의 시사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국내 방송시장, 특히 유료방송 시장이 성장의 정체 및 구조변화에 따라 분쟁 양상이 심화하면서 약탈적 경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은 치열해지는 데 반해 수익 창출의 가능성은 점차 줄고 있는데 따른 것이란 의미다.

    둘째, 방송시장이 보인 저가구조에 따라 배분 대상 수익의 모수가 협소해 분쟁 가능성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이 재편되고, 새로운 질서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갈등의 양상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셋째, 법령의 사후규제 비대칭성으로 인해 동일 시장에서 상이한 사후규제 등이 적용됨에 따라 분쟁 양상은 더욱 다변화될 것이란 점이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을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입법 틀이 갖춰지지 않아 신구 미디어 사업자 간 규제 형평성에 따른 분쟁 가능성 역시 갈수록 복잡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결국 시장과 산업에서 나타날 갈등은 더욱 치열하게 그리고 점증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편 것이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미디어 시장과 산업이 과거 전례 없는 환경 속에서 갈등 및 혼란을 겪고 있는 사이, 확장된 시장에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미디어 기업들이 등장해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미디어 신산업 분야에 등장하는 새로운 사업모델들이 바로 그들이다.

    ‘Cross border MCN’을 표방하며 등장한 한 미디어 기업은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국경을 넘어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곳이다. 그러나 기존 레거시 미디어와는 전혀 다른 방식 으로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용자 수 20억 명, 1분마다 400시간이 넘는 분량의 새로운 동영상이 업로드되는 유튜브조차 진출하지 못한 중국 시장을 목표로 하는 곳이다. 한국의 경쟁력 있는 창작자들을 모아 이들이 만든 영상 콘텐츠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중국 동영상 플랫폼에 유통함으로써 수익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튜브라는 글로벌 OTT를 통해 키워진 국내 1인 창작자들을 유튜브가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 진출시키는 독특한 비즈니스 아이디어로 새로운 미디어 시장을 개척하고 있던 셈이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익 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지속해서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엔 이와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4마치며: 새로운 질서를 향한 움직임
    지상파방송 사업자, 유료방송 사업자, 콘텐츠 기업 등이 제기하는 쟁점 그리고 이들이 일으키는 갈등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논의와 이들을 묶어 놓은 모든 틀을 둘러싼 고민은 이제 다소 해묵은 논제로까지 여겨진다. 방송 미디어와 그 콘텐츠 그리고 미디어 기업의 정의를 달라진 환경에 부합하도록 새롭게 써야만 이 논의가 단순한 임기응변식 대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고민은 이미 수 년여 전부터 국내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해외 일부 국가들은 단순한 고민과 논쟁의 수준을 벗어나 구체적인 제도로서 밑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유럽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EU의 시청각미디어서비스 지침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관련 법제 개선 논의는 우리의 시선을 끄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8년 공표된 시청각미디어서비스 지침은 수차례에 걸친 개정을 거치면서 일관되게 두 가지 주요 목적을 표방해 왔다. 첫째, 시청각미디어서비스 분야에서 유럽의 단일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며, 둘째, 시청각미디어서비스 분야에서 공익을 위한 유럽 공통의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단일 시장 형성 목적은 다양한 사업자가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공정 거래 환경 조성이라는 내수 시장의 기본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곧 시장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지침의 경제적 목적에 해당한다. 공익 목적은 정보의 자유, 의견의 다양성과 미디어 다원주의 보장, 유럽 시청각 작품의 제작과 유통 발전 고무, 중소 독립 제작사 보호, 소비자(시청자, 특히 미성년자) 보호, 시각·청각 장애인 보호와 미디어 교육 증진 등이 지침에 명시되어 있다. 이에 관해 지침은 최소한의 규제 수준만을 제시하고 있으며 각 회원국에서는 이보다 엄격한 규제를 도입할 수 있다(송영주, 2017; 김광재, 2019).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 각국은 이와 관련한 기민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제 우리 차례일 수 있다. 지난해 초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원회도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올해는 어쩌면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의 토대가 조성될 수 있다는 기대가 조성되고 있다. 정치적 지형의 변화와 맞물려 정부조직 그리고 미디어 시장과 산업 전반에 걸쳐 과거 수십여 년에 걸쳐 고수돼 온 정의를 쓰일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롭게 수립되는 질서 속에 포섭될 미디어와 콘텐츠 형식이 커지고 다양해질수록, 미디어와 콘텐츠 사업자에게 거는 사회적 가치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 실현에 거는 기대 역시 함께 성장할 것이다. ESG 경영으로 불리는 가치경영 구현 방식이 미디어 사업자들에게도 적극 요구되는 첫해가 올해가 될 수 있다.

    시장과 규제의 비정합성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비정합으로 인한 간극이 다양한 제도적 보완 장치 등을 통해 메울 수 있는 수준일 때, 시장은 그리고 산업은 정책과 규제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인내한다. 2022년은 변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주저했던 그간의 다양한 논의들이 숙의의 단계를 넘어 실천의 자리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 사업자, 정책 당국 그리고 이용자 모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변화의 물결을 체감하는 순간을 경험케 할 것 같다.
  • Reference

    1. 김광재(2020). EU 2018 시청각미디어서비스 지침 개정의 의미와 주요 내용. 미디어 이슈&트렌드,vol.28, 84-95.
    2. 김광재(2020). 방송 기반 미디어 커머스, 규제 그리고 과제. 미디어 이슈&트렌드, vol.37, 77-85.
    3. 이종관(2021). 방송시장 환경변화에 따른 공정경쟁 이슈 및 전망. 시청자미디어재단 세미나 발제문.
    4. 송영주(2017). 유럽연합 회원국의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 이행사례를 통해 본 신유형 방송 서비스 규제의 한계. 미디어 경제와 문화, 15(3), 47-85.
    5. Statista(2021). Market size of over-the-top(OTT) video services in South Korea from 2012 to 2021.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228288/south-korea-market-size-ott-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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