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슈 & 트렌드57호(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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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리포트

애플 비전 프로(Vision Pro)
"사망선고 받은 메타버스 되살릴까"

한정훈(다이렉트미디어랩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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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글

애플(Apple)이 드디어 자사의 첫 혼합현실 헤드셋(Mixed Reality Headset) '비전 프로(Vision Pro)'를 공개했다. 애플은 이 제품을 공간 컴퓨터(Spatial Computer)라고 부르며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을 끊김없이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정의했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툴·줌·페이스타임·애플TV+·디즈니+ 등 맥북이나 아이패드, 아이폰에서 쓸 수 있는 모든 앱과 솔루션을 비전 프로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전 프로만 있다면 다른 디지털 기기 도움 없이도 업무를 보고 엔터테인먼트, 소셜 미디어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전 프로는 전면 카메라와, 상대방이 착용자의 눈과 얼굴 표정을 볼 수 있는 투명 선글라스를 탑재해 오프라인 공간과의 단절감을 최소화했다. 특히, 비전 프로 행사장에 밥 아이거 디즈니 CEO가 등장해 VR공간에서의 스트리밍 서비스 구동을 시연했다. 가상공간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어떻게 진화할지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진1 Introducing Apple Vision Pro(화면 캡처)
Introducing Apple Vision Pro(화면 캡처) 이미지

출처: Apple 공식 Youtube

애플(Apple)이 지난 2023년 6월 5일 공개한 MR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는 과거 VR 헤드셋과는 개념이 전혀 다른 기기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 기기라기보다, 기존 PC를 대체하는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을 향한 디바이스다.

비전 프로는 2024년 1월 미국에서 먼저 시판된다. 제품 소개에 나온 팀 쿡 애플 CEO는 전체 1시간 반 행사에서 30분을 비전 프로 설명에 할애하는 등 애플의 첫 번째 MR 헤드셋에 많은 공을 들였다. 팀 쿡(Tim Cook) CEO는 "나는 증강현실이 심오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1) 며 "애플 비전 프로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스마트폰과 비전 프로는 사람들에게 같은 경험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전 프로가 공간에서 사용하는 또 다른 컴퓨터라는 이야기다.

이어 쿡은 "수십년간 애플 혁신 역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비전 프로는 현존하는 다른 어떤 시스템과도 비교될 수 없다"며 "혁신적인 새로운 입력 시스템과 수천 개의 혁신이 제품에 적용됐다"고 덧붙였다. 비전 프로는 공간에서 간단히 손을 움직여 제품을 조작할 수 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통해 모든 현실 생활을 가상 공간에서도 즐길 수 있다고 밝혔다. 헤드셋 소개를 위한 30여 분 데모에서도 가상공간에서 작업과 페이스타임을 통한 텔레커뮤니케이션, 홍채 인식을 통한 애플리케이션 작동 방식 등에 설명이 집중됐다.

개인 극장으로 변하는 VR공간

애플은 비전 프로의 조작 방식을 혁신적이라고 강조했다. TV리모컨처럼 조작의 편리함은 엔터테인먼트 기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외부 컨트롤러 없이 눈동자와 손만 움직여 파일을 열고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음성 입력(Employs Voice Input)도 가능하다. 물론 앱 개발자들은 정보 보안을 위해 사용자 정확한 눈 위치 혹은 개인 정보에 접속할 수 없다.

입력 시스템 개선을 위해 애플은 비전 프로에 '아이 사이트(Eye Sight)'라는 기술을 적용했다. 완전 몰입형 VR모드가 아닌 증강현실(Augmented-Reality Mode) 모드를 적용해 외부에서도 사용자의 눈을 볼 수 있다. 착용자 역시, 앱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외부 환경을 인지할 수 있다.

애플은 헤드셋에 3D카메라를 장착했다. 카메라를 통해 외부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비디오도 찍을 수 있다. 또 이 카메라는 애플 TV+나 아케이드 게임 등과 연동돼 '개인용 영화관(Personal Movie Theater)'과 같은 환경도 제공한다. 마치 극장에 앉아 영화를 즐기거나 TV에 게임기를 연결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경험을 MR 헤드셋에서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비전 프로는 스트리밍이나 게임 등의 시청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품질 UHD 화질을 채택했다. 애플은 "4K TV보다 더 많은 픽셀을 탑재했고 공간 오디오 시스템도 탑재했다"고 강조했다.

애플은 헤드셋에서 쓸 수 있는 앱들도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엑셀, 스카이 가이드의 '천체 관람앱(The Sky Guide Planetarium App)', 'DJ앱' 등을 론칭 시점부터 사용할 수 있다. 또 애플은 수만 개 아이폰과 아이패드 앱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유니티를 사용한 3D 앱들도 비전 프로에서 쓸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2 팀 쿡 애플 CEO(화면 캡처)
팀 쿡 애플 CEO(화면 캡처) 이미지

출처: Apple 공식 Youtube

비전 프로 콘텐츠에 대한 설명은 부족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비전 프로의 스트리밍 기능과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헤드셋 공개와 동시에 디즈니+를 쓸 수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기능이나 스펙, 콘텐츠는 오픈되지 않았다. 특히, 공간 컴퓨팅에서 비디오와 오디오 콘텐츠가 어떻게 작동되고 오디언스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장 큰 관심사지만 현장 그림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과거 애플이 디즈니 '만달로리안'과 애플 TV+의 '선사시대: 공룡이 지배하던 지구(Prehistoric Planet)'의 수석 프로듀서 존 파브로(Jon Favreau)와 헤드셋을 통해 시청할 수 있는 VR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6월 5일 프레젠테이션에서는2) 3) 공개되지 않았다.

사실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나 기기는 정확한 용도가 필요하다. 메타로선 아쉬운 결과겠지만, 메타의 VR 헤드셋이 2022년 1,000만 대 판매를 돌파한 이유도 상당수가 게임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애플 TV+와 디즈니+ 외 지원되는 다른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에 애플 워치가 2015년 처음 공개됐을 때 시계에서 쓸 수 있는 3,000개 앱이 공개됐지만 정작 유용한 것이 없다는 비난이 재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거의 4분… 스펙을 스토리로 바꾸다

그러나 상황은 밥 아이거(Bob Iger) 디즈니 CEO가 애플 행사장에 등장한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행사장 흐름도 바뀌었다. 애플 임원으로 가득 찬 현장에 엔터테인먼트 거물의 등장은 강력한 충격을 줬다. WWDC(Apple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에서 디즈니가 제공한 이런 시각적 효과는 거실을 뛰어다니는 AR 3차원 버전 미키마우스를 상상하게 했다.

밥 아이거가 비전 프로와 함께 즐기는 디즈니+와 콘텐츠를 소개하자 사람들은 'VR 헤드셋에서 즐기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밥 아이거의 등장만으로 VR 엔터테인먼트의 중요성이 확실히 강조되는 순간인 셈이다.

사진3 밥 아이거 디즈니 CEO(화면 캡처)
밥 아이거 디즈니 CEO(화면 캡처) 이미지

출처: Apple 공식 Youtube

아이거가 등장한 시간은 총 4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애플의 연간 글로벌 개발자 콘퍼런스(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의 시선을 팀 쿡 CEO에게서 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거물(Entertainment Mogul)4)인 밥 아이거는 개발자들에게 큰 환대를 받았다. 아이거가 가장 중요한 조연이었던 이유는 비전 프로가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아이거는 카메오였지만 역할은 주연 이상이었다. 비전 프로가 새로운 스트리밍 플랫폼이 되고 이 경험이 비전 프로를 살릴 수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VR 헤드셋의 방점이 스펙에서 스토리로 진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VR회의론자'들의 마음까지 흔들고 있다.

밥 아이거 CEO는 현장에서 "애플 비전 프로는 혁신적인 플랫폼"이라며 "디즈니는 이 플랫폼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깊게 몰입되는 스토리를 만들어 오디언스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애플은 비전 프로에서 작동되는 스트리밍 서비스 콘셉트와 '실제 착용자가 보게 될 영상'을 공개했다. 마블 히어로 영화부터 스타워즈까지 모두 MR헤드셋을 통해 시청이 가능하다.

밥 아이거 CEO는 또 "비전 프로는 미디어 기업들이 실생활에 마법을 가져다주는 방법을 제시했다"며 "디즈니+는 비전 프로 출시 첫날 바로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전 프로에서는 3차원 스트리밍 영상도 볼 수 있다. 애플 TV+의 자연 다큐멘터리 등은 3D 콘텐츠로 제공될 전망이다. 이 지점은 메타의 퀘스트 VR 헤드셋과 가장 큰 차이다.

애플과 디즈니가 만드는 VR동맹

애플은 디즈니와의 협업을 통해 VR 플랫폼 스트리밍 시청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공개 현장에서는 '왓 이프(What IF)', '만달로리안' 등 몰입형 스타워즈 콘텐츠와, 농구 등 스포츠 경기를 가상 TV로 연결해 시청하는 장면, 마치 경기장에 들어간 듯한 3D 공간을 비디오로 공개했다. 아울러 디지털 버전 디즈니 테마파크를 현실 영상이 투사하는 가상 현실 장면도5) 소개했다.

디즈니는 비전 프로가 엔터테인먼트 가상현실로 가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거의 메시지는 혁신적이었다. 비전 프로를 통해 구현될 디즈니 스트리밍은 시각적 시청 제한이 없었다. 밥 아이거는 "디즈니+ 구독자들은 '비전 프로'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들을 과거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데모 화면에서는 가상공간에 떠 있는 디즈니+ 앱과 이를 클릭해 보는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시청자들이 만달로리안 행성에 들어가서 콘텐츠를 보는 몰입형 경험은 압권이었다.

이에 따라 콘텐츠 사업자들도 애플의 비전 프로가 매우 기다려지는 상황이 됐다. 뉴스와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다. 아이맥스 영상을 모바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표시했다. 출시 현장에서는 간단한 콘텐츠만 공개됐지만 디즈니와 애플은 오랜 협업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픽사를 인수한 장본인이 밥 아이거다. 아이폰을 통한 콘텐츠 유통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도 디즈니다. 디즈니+가 미디어의 새로운 플랫폼인 VR 헤드셋을 위한 'VR 스트리밍'도 고려할 수 있다.

애플의 AR 시대 환영

애플 비전 프로는 지난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회사가 내놓은 가장 중요한 플랫폼으로 볼 수 있다. 45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만 봐도 애플이 이 제품의 성능 향상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아이폰으로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열었다면 비전 프로로는 공간 컴퓨팅 시대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애플 AI글라스가 만드는 증강현실 세계(AR)에서는 가상현실 콘텐츠가 실사와 교감하고 우리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어울릴 수6) 있다.

물리적 제한이 사라진, 디지털 콘텐츠는 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 특히, 생성AI와 메타버스가 만날 경우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콘텐츠가 현실에 재현될 수 있다. 이런 가상 현실도 개인 맞춤형 콘텐츠로 진화할 수 있다.

버라이어티는 "애플의 비전 프로는 콘텐츠를 책상과 벽의 모니터에서 해방시키고 대신 우리를 둘러싼 가상 스크린, 심지어 장엄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거대한 스크린을 갖게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애플과 디즈니는 함께 이런 영화적 가능성을 가상 공간에 구현할 계획이다.

수십년간 이어온 시각의 확장

콘텐츠의 가상공간 확장은 수십년을 이어온 미디어 기업들의 목표였다. 기술도 진화해왔다. 1960년대 첫 실험을 시작했고 컴퓨터가 3D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게 된 1980년대 후반, 가상현실(VR)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인터랙티브 증강현실 시스템(First Interactive Augmented Reality System)은 미국 공군에서 나왔다. 1992년 미국 공군연구소(Air Force Research Laboratory)가 개발한 '버추얼 고정 플랫폼(Virtual Fixtures Platform)'은 사용자들이 물리적 객체와 가상 객체가 섞인 혼합 현실과 교감7)할 수 있게 했다.

이어 초대형 디스플레이가 학교에도 진출했다. 2019년 하버드대학교에 설치된 61피트 대형 디스플레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헤드 트래킹' 기술을 적용해 사용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몰입적인 콘텐츠를8) 즐길 수 있게 했다.

이렇듯 증강현실 개념은 이미 30년 전에 개발됐다. 그러나 몰입형 증강현실(Immersive Augmented Reality)은 아직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애플의 비전 프로는 큰 주목을 끌고 있다. 애플 비전 프로가 탑재한 테크놀로지는 업계 최강이다.9) 12개의 카메라를 달아 손의 움직임을 트래킹하고 눈 움직임을 따라 앱이 클릭된다. 가상 현실과 실사가 섞이는 혼합현실도 비전 프로에서는 가능하다. '카메라 패스 스루(Camera Pass Through)'10)라고 불리는 기술은 디바이스가 정확하게 실사와 버추얼 세상을 정렬(Align the Real and Virtual Worlds) 시킬 수 있게 한다.

패스 스루 기술은 고품질 비주얼이 장점이지만 그동안 사용자들의 시야를 제한하는 게 오랜 문제였다. 그러나 애플은 이런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했다. 헤드셋의 유리 표면 뒤 사용자의 눈을 시뮬레이션해 다른 사람들이 비전 프로 사용자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 것이다. 이에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도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이 기술에 대해 애플은 "아이 사이트(Eye Sight)11)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VR 헤드셋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증강현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오는 2030년이면 몰입형 안경(Immersive Eyewear)12)은 전화기와 유사할 정도의 기능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13) 30년 전 개발된 AR기술이 60년이 된 시점에 완전 상용화되는 것이다. 단 이들 개인 정보는 AI로 인한14) 조작에 취약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AR세계 엑스포(Augmented World Expo)15)에서는 식당에서 AR글라스를 쓰고 밥을 먹는 가족들의 개인 정보 노출 위험을 담은 단편영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사진4 PRIVACY LOST 단편영화(화면 캡처)
PRIVACY LOST 단편영화(화면 캡처) 이미지

출처: Privacy Lost 공식 Youtube

AI기술로 가족들의 감정이 실시간 분석된다. 영화에서는 AI 생성 종업원들이 자신의 판매 전략을 상대방에 맞춰 최적화하고 손님들의 성향을 분석해 판매를 극대화하는 모습이 보여진다.16)

이에 증강현실 대중화로 인한 개인정보 악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17) 특히, 몰입형 증강현실 환경에서 AI가 개인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반 환경보다 선택의 한계가 있는 몰입형 환경에서는 AI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애플의 비전 프로 등 MR디바이스는 세상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의 경험을 평면 스크린에서 확장시켜 더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콘텐츠 시청 경험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집과 사무실을 마법의 공간으로 만들고 개발자들이 만들고 싶은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디즈니와 애플의 만남… 시장에서 통할까

팀 쿡의 열광적인 제품 소개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MR헤드셋이 주류 제품으로 자리 잡을지는 알 수 없다. 일단 한국 돈으로 400만 원 중반대 고가(가격)이고, 아직은 지원하는 앱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의 기본이 된 스마트TV도 1,000달러 이내로 가격이 들어오면서 급격히 확산됐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애플은 애플TV+와 디즈니+를 이용 가능하다고 했지만 정작 넷플릭스 등의 지원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물론 아직 출시까지는 시간이 있는 만큼, 애플은 넷플릭스와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특히, 스포츠)의 비전 프로 지원 확대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비전 프로는 2015년 애플 워치 공개 이후 7년 만에 애플이 공개한 새로운 카테고리 미디어 플랫폼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플은 첫해 실적을 소박하게 잡았다.18) 블룸버그는 최근 애플이 출시 첫해 90만 대 판매를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디즈니는 마블 시리즈 '왓 이프(What If)'의 VR버전을 공개했지만, 소비자들이 버전 프로를 통해 가상현실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가 아닌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19) 역시, '블랙 미러(Black Mirror)', '베어 그릴스(Bear Grylls)' 등 시청자들에게 결정권을 제공하는 인터랙티브 드라마, 영화를 공개하고 있지만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다.

애플 비전 프로에서 작동되는 디즈니+는 넷플릭스의 인터랙티브 콘텐츠보다 훨씬 더 강한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지만 대중적 성공은 다른 문제다. 이전에도 비슷한 증강현실 시각적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효과를 약속했던 매직 리프(Magic Leap)가 있었다. 실사와 가상 현실을 결합한 헤드셋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매직 리프는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결국 B2C에서 B2B마켓으로 전환했다.20) 매직 리프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필요한 스토리가 없었던 것이다.

스펙이 아닌 스토리를 강화하는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VR스포츠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디즈니는 코트에 직접 앉아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가상현실 농구 콘텐츠도 공개했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상업적으로 현실화되지21) 못하고 있다.

2016년에도 NBA 위원 아담 실버(Adam Silver)가 홀로그램 기업과 체험형 경기 관람 플랫폼 구축을 논의했었다. 심지어 비전 프로가 세계에서 가장 멋진 스키 고글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왜 선글라스를 쓰고 영화를 봐야 할까.' 메타버스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은 팬데믹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라는 차가운 시선이 아직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장의 선택이다. 시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디즈니+의 비전 프로는 세상을 바꿀 것 같았던 구글 글라스나 3D TV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메타는 2019년 가상현실 소셜 미디어 플랫폼 페이스북 호라이즌(Horizon)을 처음 공개했다. 하지만, 결국 새로운 플랫폼을 만드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다. 회사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면서까지 배수의 진을 치고 있지만 여전히 적자다. 메타의 고전은 가상현실을 상업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메타와 애플의 VR대전 성공은 스트리밍

애플의 VR 헤드셋 공개에 따라 메타 퀘스트와 본격적인 시장 경쟁이 예상된다. 애플 비전 프로 공개에 앞서 메타는 새로운 세대 VR 헤드셋 '퀘스트3'를 공개하고 2023년 가을부터 구매가 가능하다고 밝혔다.22) 하지만, 제품 가격은 애플의 7분의 1인 500달러다. 물론 애플의 비전 프로는 메타 제품의 7배 가격인 만큼 스펙(Spec)에서는 상당히 뒤진다.

메타에는 없고 애플에 있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밥 아이거(Bob Iger)의 지원이다. 디즈니가 애플과 손을 잡은 이상, 저커버그는 워너 브러더스 디스커버리나 파라마운트 글로벌 CEO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협업할 수도 있다.

과거 디즈니와 손을 잡은 애플 아이폰은 콘텐츠 유통의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애플은 디즈니의 도움이 절실해보인다. 애플은 편당 1.99달러로 다운받는 디지털 구독 모델을 도입했지만 결국 넷플릭스가 들어오면서 모든 시장은 스트리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렇다면 메타는 할리우드와 손을 잡을까? 현재까지는 메타와 할리우드의 협업에 대한 전망은 다소 부정적이다. 메타 퀘스트 프로용 스트리밍 플랫폼(피콕)도 나왔지만 현재까지는 엔터가 완전한 중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저커버그 메타 창업주는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라는 VR 헤드셋을 처음 내놨다.23)

그러나 이 기기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가상 소셜 미디어가 핵심이었다. 당시 버라이어티는 "오큘러스 리프트는 페이스북을 영화 비즈니스에 넣으려는 시도"라고 언급했다. 지난 6월 8일 직원 올핸즈 미팅 때도 저커버그는 "우리의 VR은 소셜 미디어"라며 "쇼파에 앉아 VR을 쓰고 혼자 앉아 있는 애플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More importantly, our vision for the metaverse and presence is fundamentally social. It's about people interacting in new ways and feeling closer in new ways. Our device is also about being active and doing things. By contrast, every demo that they showed was a person sitting on a couch by themself.

VR 헤드셋은 장기적으로는 TV를 넘어 극장까지 위협하는 새로운 유통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0년 전에도 그랬듯,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기술도 그렇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상공간의 정의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갈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까지 VR 헤드셋은 게임 시장에서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이에 경기 침체와 함께 헤드셋 판매도 지지부진하다.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2022년 VR 및 AR 헤드셋 판매량은 21% 감소해 1,120만 대에서 880만 대로 줄었다. 이 중 메타의 퀘스트는 약 8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애플의 VR 헤드셋이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더 많은 용도를 증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 등 게임 이외 엔터테인먼트 용도의 사용 확대는 VR대중화에 가장 중요하다. 비전 프로를 통한 VR시청이 일반화된다면 이용 시간과 용도가 확장될 수 있다. 메타도 2023년 4월 퀘스트2와 퀘스트 프로용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Peacock)을 공개했다.

애플의 참전, 메타버스를 살릴까?

빅테크 애플(Apple)은 메타버스에서도 한 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애플이 언젠가는 메타버스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도 많은 이가 애플의 참전을 기다렸다. 그들이 내놓은 제품들은 단순한 기기가 아닌 새로운 길과 경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팟, 아이폰, 애플 워치 등을 출시하며 새로운 경제와 플랫폼을 만든 회사인 만큼 애플의 VR 헤드셋이 '메타버스 시장'을 대중화하고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일부는 메타버스와 VR플랫폼 시장은 애플의 제품 출시 전후로 나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하고 있다. 애플 워치의 경우 2019년 출시 첫해에 회사 내부 목표치 4,000만 대에 훨씬 못 미치는 1,000만 대를 판매했지만24) 4년 뒤 애플 워치 판매는 '스위스 시계 산업' 전체를 앞섰다.25)

아이폰 역시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다. 애플은 스마트폰을 내놓은 첫해 단지 140만 대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했다. 그다음 해 판매량도 1,200만 대에 그쳤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아이폰은 애플을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바꿔놨다. 애플 아이폰의 스마트폰 점유율(출고량 기준) 2022년 4분기 기준, 전체의 25%(7,320만 대)나 된다.26)

애플이 VR시장에서도 이런 성공 스토리를 반복하고 새로운 경제를 열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경쟁 업체와 차별되는 기능과 함께 VR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다양성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애플이라도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이 과정은 최소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1 글로벌 AR/VR 매출 전망
글로벌 AR/VR 매출 전망 그래프

출처: 버라이어티

스트리밍 등 미디어 업계에도 애플의 VR 플랫폼 출시는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콘텐츠를 송출한 새로운 윈도우와 마켓이 생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VR 헤드셋과 함께 자체 혹은 외부 협력 회사를 통해 다양한 VR앱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 피트니스, 명상 등과 영화, TV시리즈 시청도 가능한 앱들이다. 스포츠 중계나 콘서트 등 라이브 이벤트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스트리밍 업계에서는 애플 헤드셋 출시에 대한 기대가 높다. 비전 프로가 외부 사람들이 헤드셋 착용자의 얼굴 표정을 볼 수도 있도록 외부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오픈형 고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기존 VR 헤드셋 착용 시 가장 큰 문제점이 '외부와의 단절' 등 고립 경험이었는데 이 점이 해결된다는 의미다. 최대한 오랜 기간 영상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사용자와 페이스타임 통화도 가능해졌다.27)

메타버스를 앞서간 선구자들의 고전

애플 등장에 가장 긴장할 사업자는 단연 메타(Meta)다. 퀘스트, 오큘러스 등으로 HMD(Head Mount Device)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타는 2021년 사업의 미래도 완전히 바꿨다.

온라인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Facebook)의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2021년 11월 의외의 발표를 했다.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면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서 온라인 공간으로 회사 중심을 옮길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어 저커버그는 향후 온라인 가상 공간 메타버스가 모바일 인터넷을 대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이 있은 한 달 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Bill Gate)는 2~3년 내 대부분 버추얼 미팅(Virtual Meeting)이 2차원 공간에서28) 디지털 아바타(Digital Avatar)의 3D공간 메타버스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비디오 게임 개발사 액티비전 블리자드(Activision Blizzard)를 70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액티비전 인수는 메타버스에서 가장 활성화될 게임 플랫폼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그림2 글로벌 AR/VR 점유율 2023년 첫 3분기
글로벌 AR/VR 점유율 2023년 첫 3분기 그래프

출처: 버라이어티

하지만, 2022년 들어 메타버스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급격히 식었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 가상 공간에서 놀고 일하고 공부하는 트렌드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또 너무 많은 기업이 메타버스에 뛰어들었지만 제대로 된 수익 모델을 만든 곳도 없었다. 실시간 공간을 3D로 완전히 대체한다는 생각도 현실에 비해 너무 앞선 개념이었다. 기업들도 메타버스 개발 인력이나 비용을 줄였다. 디즈니 등 많은 기업이 메타버스 사업부를 정리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내부적으로 첫해 VR 헤드셋 판매량을 90만 대에서 300만 대 정도로 보고 있다. 최근 VR 헤드셋 판매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은 성장 시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