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슈 & 트렌드55호(3+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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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BBC의 디지털 전환

주대우(KBS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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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글

본고는 과거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세계 여러 방송사의 벤치마킹 사례가 된 바 있는 BBC의 디지털 전환 경과와 전략, 시사점을 살펴본다. BBC는 2007년 아이플레이어(iPlayer) 런칭 이후, 아이플레이어 최우선 전략(iPlayer First Strategy)을 통해 아이플레이어를 TV, 라디오에 이은 BBC의 핵심 매체 중 하나로 자리매김시킨 바 있다. 이후 BBC는 아이플레이어는 물론 BBC 사운즈(BBC Sounds), BBC 스포츠(BBC Sport) 등 전반적인 BBC 디지털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육성하는 디지털 최우선 전략(Digital First Strategy)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사적으로 디지털 최우선 BBC(Digital First BBC)로 나아간다는 비전이다.

1. 들어가며

온라인 환경에서의 TV 시청이 대중화되고 넷플릭스 등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이용이 확대되면서 방송사에도 디지털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다. 본고는 방송사의 디지털 전환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혀온 BBC의 디지털 전환 경과와 전략, 시사점을 살펴본다.

2. BBC의 디지털 전환

Phase 1. 디지털 서비스 개시

BBC는 1997년 웹사이트를 통해 처음으로 대고객 디지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BBC.co.uk' 도메인의 경우 자국 BBC 고객을 대상으로 뉴스나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으며 'BBC.com' 도메인의 경우 해외 이용자를 대상으로 영국은 물론 각국의 뉴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BBC가 홈페이지 제공 수준에서 벗어나 시장 혁신적 디지털 전환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아이플레이어를 출시한 2007년부터다. 2007년은 넷플릭스가 미국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해로, 당시 영국에는 이렇다 할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었다. 따라서 영국 스트리밍 시장은 공영방송 BBC가 아이플레이어를 통해 개척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림1 BBC 아이플레이어 슬로건
BBC iPLAYER. MAKING THE UNMISSABLE, UNMISSABLE.

출처: The Guardian (2008)

당시 아이플레이어는 BBC 방송의 다시 보기 서비스 개념이 강했다. 따라서 아이플레이어가 제공하는 콘텐츠는 BBC 방송 편성표에 따라 구성되었으며 방송 후 7일간 다시 보기가 가능했다. 당시 아이플레이어의 서비스 슬로건 또한 "놓쳐서는 안 될 것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Making the unmissable, unmissable)"이었다. BBC 방송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것에 아이플레이어의 고객 소구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BBC 아이플레이어가 영국 공영방송사 최초로 출시된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니었다. BBC보다 한 해 앞선 2006년 채널4(당시 C4)가 스트리밍 서비스인 '4oD'를 런칭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oD 는 제공 콘텐츠의 양이 많지 않았고, 광고 기반으로 런칭돼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아이플레이어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BBC 콘텐츠의 인기는 물론 광고가 없다는 이점을 등에 업고 영국 스트리밍 시장에서 파이를 키워나갔다. 그 후 경쟁사인 채널5(당시 C5)가 '올 파이브(All 5)'를, ITV가 'ITV 플레이어(ITV Player)'를 출시했다. 이후 2012년에는 스카이(Sky)가 '나우 TV(Now TV)'를 런칭했으며 넷플릭스 또한 영국 시장에 출시되며 스트리밍 서비스가 다양화되었다.

캥거루(Kangaroo) 프로젝트 또한, BBC가 ITV, 채널4와 함께 혁신적인 디지털 전환을 꾀한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캥거루 서비스는 BBC, ITV, 채널4 콘텐츠는 물론 외부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특히 캥거루는 오리지널 프로그램까지 계획한 바 있어, 마치 현재 넷플릭스와 흡사한 형태의 서비스를 목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캥거루 프로젝트는 승인받지 못했다. 당시 영국 공정거래위원회(Competition Commission)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BBC, ITV, 채널4가 통합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중소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들과의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승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영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이 결정은 "영국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을 넷플릭스, 아마존과 같은 외국 서비스에 내어주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며 지금도 비판받고 있다. 비판 측은 캥거루 서비스가 계획대로 런칭되었다면 현재 영국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는 영국 공영방송사들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에서 넷플릭스가 런칭된 2007년에 캥거루 서비스 또한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세계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 캥거루가 넷플릭스의 경쟁 서비스가 되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Phase 2. 아이플레이어 최우선 전략(iPlayer First Strategy)

2013년에 토니 홀(Tony Hall)이 BBC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BBC의 디지털 전환은 한층 더 가속되었다. 특히 아이플레이어는 BBC 디지털 전환의 최전선에 자리하며 BBC가 더 이상 아날로그 방송사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림2 BBC 전임 사장 토니 홀
토니 홀 사진

출처: About the BBC Flickr

토니 홀 사장 시기 아이플레이어는 아날로그 BBC 방송의 다시 보기 서비스, 즉 '부가 서비스' 성격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 시기 BBC는 아이플레이어를 TV, 라디오에 이은 BBC 핵심 매체 중 하나로 자리매김시켰다. 2013년 처음으로 아이플레이어 독점 드라마를 제공, 아이플레이어 전용 콘텐츠를 강화하였고 2014년 BBC 3 지상파 채널을 아이플레이어에서 제공되는 온라인 채널로 전환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지상파로 전송되던 채널을 온라인 채널로 전환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었기에, BBC의 해당 계획은 시장에서 매우 급진적 성격의 디지털 전환 시도로 평가받았으며 그 결과에 대해 많은 세계 공영방송사가 주목했다.

이후에도 아이플레이어를 BBC의 핵심 매체 중 하나로 성장시키기 위한 BBC의 아이플레이어 최우선 전략은 다양한 측면에서 진행되었다. 우선 킬링 이브(Killing Eve) 등 여러 인기 프로그램이 BBC 지상파 서비스 전 아이플레이어로 선공개되었다. 그리고 BBC는 다른 BBC 매체에서는 제공되지 않고 오직 아이플레이어에서만 제공되는 아이플레이어 전용 오리지널 프로그램도 강화하였다(참조: BBC iPlayer Exclusives https://www.bbc.co.uk/programmes/p026sy87). 그리고 다시 보기 서비스 이용 기간도 기존 7일에서 1개월로 늘렸으며, 최근에는 규제기관 허가하에 1년까지 확대했다. BBC는 이런 아이플레이어 최우선 전략을 통해 과거 공영방송 서비스(Public Service Broadcasting)에서 공영미디어 서비스(Public Service Media)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Phase 3. 디지털 최우선 전략(Digital First Strategy)

BBC 아이플레이어를 최전선에 내세운 BBC의 디지털 전환 전략은 점차 전반적인 BBC 디지털 서비스로 확대되었다. 감사원이 최근 정리한 BBC 디지털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BBC는 핵심 디지털 서비스(Priority Services)와 부차적 서비스(Secondary Services), 기타 트래픽 유입을 위한 서비스(Funnels)를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핵심 서비스의 경우 BBC 아이플레이어, BBC 사운즈(BBC Sounds), BBC 뉴스(BBC News), BBC 스포츠(BBC Sport) 등 4개의 디지털 서비스로 구성된다. 이는 BBC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서비스다. 특히 BBC는 2018년에 BBC의 라디오, 오디오 및 음악 서비스인 BBC 사운즈를 런칭하며 2019년에는 아이플레이어에서 제공되던 모든 오디오 서비스 제공을 종료했다. 이를 통해 아이플레이어는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그 포지셔닝을 명확히 하는 한편, BBC 사운즈는 스포티파이 등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와 경쟁하는 별도의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과거 아이플레이어 내에서 오디오 콘텐츠는 영상 콘텐츠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BBC 사운즈로 콘텐츠가 분리되면서 대중 접근성이 높아지고 시장위협적인 서비스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차적 서비스의 경우 BBC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BBC 바이트 사이즈(BBC Bitesize), 날씨 애플리케이션 BBC 웨더(BBC Weather), 어린이 콘텐츠를 제공하는 BBC 시비비스(BBC CBeebies), 레시피 등을 제공하는 BBC 푸드(BBC Food)와 BBC 홈페이지 등이 포함된다. 이외 소셜미디어나 제3자 플랫폼 등은 BBC 디지털 서비스로 트래픽을 유입하기 위한 수단(Funnel)으로 운영한다.

그림3 BBC 디지털 포트폴리오
주력 상품과 부차적 서비스 및 우선 서비스 안내

출처: NAO(2022)

BBC 디지털 서비스가 싱글 사인온(Single Sign-on)에 기반한 BBC 계정(BBC Account)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BBC 디지털 서비스가 로그인 없이 이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는 BBC가 이용자의 콘텐츠 이용 성향에 대해 추적, 분석할 수 없게 만드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데이터가 없다면 넷플릭스처럼 개인화된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

따라서 BBC는 2017년부터 BBC의 주요 디지털 서비스 이용 시 BBC 계정 개설 및 로그인을 의무화했다. 또 하나의 BBC 계정으로 아이플레이어는 물론 BBC 사운즈 등 BBC가 제공하는 모든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획득된 데이터는 아이플레이어 영상 콘텐츠 시청 내역을 토대로 한 BBC 사운즈의 개인화된 경험을 향상 등에 쓰였다.

Phase 4. 디지털 최우선 BBC(Digital First BBC)

현 BBC 사장 팀 데이비(Tim Davie)는 지난해 5월 22일, 직원들에게 "오늘부터 우리는 디지털 최우선 BBC로 단호하게 나아간다(From today, we are going to move decisively to a digital-first BBC)"며 단호하고 명확한 BBC의 미래 비전을 선포했다. 이는 과거 BBC가 '디지털 최우선 전략(Digital First Strategy)'을 지속적으로 주창해왔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 제시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디지털 최우선'이라는 모토가 BBC가 추진하는 여러 전략적 방향성 중 하나에서 이제는 BBC의 전사적 비전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림4 BBC 사장 팀 데이비
팀 데이비 사진

출처: Royal Television Society(2022)

팀 데이비는 '디지털 최우선 BBC'라는 전사적 비전 아래, 앞으로 BBC 자원을 디지털에 최우선 투자하겠다며 방향성을 제시했다. 팀 데이비는 그간 너무 많은 BBC의 자원을 온라인이 아닌 방송에 집중 투자하고 있었다며(Too many of our resources are focused on broadcast and not online), 일부 지상파 방송 서비스를 폐지해서라도 디지털 서비스 강화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에 따라 BBC는 예술 및 음악 중심 채널인 BBC 4는 물론 어린이 채널인 CBBC까지 폐지할 예정이다. 또한, 뉴스 채널도 분리 운영돼온 국내 뉴스 채널과 글로벌 뉴스 채널을 하나의 뉴스 채널로 통폐합한다. 청취자가 많지 않은 시간대의 라디오 프로그램도 축소한다.

Phase 5. 디지털전용 BBC?(Digital Only BBC?)

팀 데이비는 지난해 연말 한 연설에서, BBC 디지털 전환의 최종적 결과는 '디지털 전용 서비스로 탈바꿈한 BBC'라고 밝혔다. 그는 연설에서 "TV와 라디오 방송이 종료된, '인터넷 전용' 세상을 상상해보라(Imagine a world that is internet-only, where broadcast TV and radio are being switched off)"며, 미래에는 지상파 TV 방송 또한 지상파가 아닌 온라인에서 제공될 것(It is all been delivered online)이라고 예상했다.

팀 데이비는 이런 시대가 되면 BBC가 BBC 1, BBC 2와 같은 세분화된 채널이 아닌 BBC라는 하나의 브랜드 아래 통합된 온라인 서비스(Joined up online offer)로 제공될 수 있다고 예견했다. 온라인에서는 TV와 달리 채널 구분이 무의미할 수 있으며, 따라서 디지털 전환된 BBC의 미래 모습은 넷플릭스와 같은 하나의 애플리케이션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3. 마치며

과거 BBC는 아이플레이어를 성공적으로 런칭하며 영국 온라인 미디어 시장을 이끌어가는 선구자적 이미지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시장파괴적인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쟁 서비스들이 데이터 활용이나 개인화 서비스 등 고도화된 디지털 기반 서비스로 앞다투어 나갈 때, BBC가 시장변화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디지털 전환 속도가 늦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BBC의 지지부진한 디지털 전환 속도의 원인은 다양한 측면이 제시되고 있으나 공통적으로는 예산 부족 문제가 지적된다. 실제로 영국감사원 추산 자료에 따르면 BBC는 2021/22년도 기준 9천 8백 만 파운드를 디지털 상품 개발(Digital Product Development)에 투자하고 있었으나 넷플릭스 등 경쟁사의 투자비 대비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팀 데이비는 최근 "디지털 전환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며, 하지만 디지털 전환에 수백 만 파운드가 소요된다(Burning Millions of Pounds)는 것이 BBC에게는 어려운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BBC는 지난 2010년 보수당 정권이 BBC 수신료 동결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면서 2017년 3월까지 수신료를 인상하지 못했다. 이후에는 수신료가 물가상승률에 따라 인상되었지만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다시 수신료 동결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BBC는 지속적인 물가상승을 감안해 볼 때 2010년 이후 그간 수신료 수익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입장이다.

표1 디지털 투자비 비교 (단위: 백 만 파운드)
브랜드 2018~19 2019~20 2020~21 2021~22
브랜드 BBC 2018~19 109 2019~20 114 2020~21 100 2021~22 98
브랜드 Netflix 2018~19 1,039 2019~20 1,271 2020~21 1,393 2021~22 1,700
브랜드 Spotify 2018~19 477 2019~20 558 2020~21 743 2021~22 766
브랜드 New York Times 2018~19 72 2019~20 87 2020~21 99 2021~22 119

출처: NAO(2022)

BBC가 디지털 전환을 위한 기술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2년 6월 기준 BBC 기술 인력 이직률은 23%를 기록했다. BBC는 신규 기술 인력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경쟁사 대비 낮은 임금과 경직된 BBC의 문화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술 인력 부족은 기술 개발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빠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BBC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BBC는 '디지털 최우선 BBC'로의 전사적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사적 조직 구조부터 비전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 현재 BBC의 디지털 전환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총괄하고 있는데, 정작 BBC 이사회나 최고임원회의에는 이 최고기술책임자가 배석하지 않는다. 조직 구조상 최고기술책임자가 최고운영책임자(COO) 아래에 편성되어 보고 체계 또한 CTO가 COO를 통해 CEO에게 보고하는 형태로 조직되어 있다. CTO를 대신하여 각종 최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공인회계사 출신 COO가 과연 중요 BBC 의사결정에서 기술적인 측면을 반영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