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슈 & 트렌드 59호(11+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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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리포트

미디어·콘텐츠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의 진화

양지훈(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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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글

글로벌 플랫폼 중심 콘텐츠 유통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콘텐츠 해외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콘텐츠 기획과 수출 전략의 강조점이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은 물론, 콘텐츠 제작사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생존을 위해 정교한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콘텐츠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IP·이야기(Story) 기반 글로컬라이제이션과 시스템 기반 글로컬라이제이션으로 분류하고 이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는지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 들어가며: 플랫폼이 주도하는 미디어·콘텐츠 생태계와 글로컬라이제이션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의 출현과 영향력 확대는 전 세계 다양한 콘텐츠가 소수 플랫폼에 집중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게 만들어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과 소비시장의 단일화'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방송·영상뿐 아니라 음악, 게임, 만화에 이르기까지 콘텐츠 산업의 모든 장르를 초월하여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유튜브와 같은 OTT 플랫폼이 영상 시장, 스포티파이와 같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이 음악 시장의 유통과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그 외에도 웹툰은 네이버 웹툰, 카카오 웹툰 등 플랫폼이, 게임은 스팀과 같은 플랫폼이 콘텐츠 유통의 글로벌 파이프라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림1 글로벌 플랫폼이 유통·소비를 주도하는 미디어·콘텐츠 시장
글로벌 플랫폼이 유통·소비를 주도하는 미디어·콘텐츠 시장 그래프

자료: 한국벤처투자(2022)

콘텐츠들이 글로벌 플랫폼을 거쳐 유통되는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면서 콘텐츠 기획과 수출 전략의 강조점이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용자들을 유입시켜야 하고 이들을 위해 현지화 콘텐츠까지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양적으로 많은 콘텐츠를 다양한 국가에서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이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30여 개 언어, 190개 국가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현지 콘텐츠 IP를 공격적으로 사들여 콘텐츠를 공급하며 회원 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반면,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는 콘텐츠의 제작 시점부터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들의 취향과 문화 코드를 고려한 세부 시장의 현지화 전략을 짜야 한다. 또 전 세계의 눈높이와 보편성의 토대에서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세계화의 요구까지 동시에 받고 있다. 즉, 글로벌 플랫폼은 물론, 콘텐츠 제작사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생존을 위해 정교한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라는 두 단어를 합친 용어로 영국의 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Roland Robertson)이 고안한 개념이다. 세계 경제라는 단일 시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전 세계 소비자에게 제품, 서비스 또는 아이디어를 어필하면서도 동시에 지역적인 취향, 문화, 가치 및 법적 요구 사항을 고려하는 전략이다. 이를 콘텐츠 산업에 적용하면 콘텐츠의 내용이나 형식, 시스템 등에 대해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현지 국가의 문화적 특성이나 요구 사항을 존중하여 이에 특화된 경영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 콘텐츠 기업은 세계화를 추구하되 주된 타겟 지역의 문화와 고객 니즈를 철저히 분석하여 그 지역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접근이 요구된다. 보통 일반 산업이나 기업에서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을 위해 기업의 핵심 강점으로 이끌고 나가야 할 표준화 전략과 해당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현지화 전략을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콘텐츠 산업의 글로컬라이제이션 구조는 표준화라기보다는, 콘텐츠 본연이 지니고 있는 강점과 경쟁력(IP·스토리·시스템 등)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지널러티(Originality)를 중심으로 현지화 전략을 추가적으로 펼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를 구조도로 정리하면 아래 <그림 2>와 같다.

그림2 미디어·콘텐츠 산업에서의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과 그 진화
미디어·콘텐츠 산업에서의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과 그 진화 그래프

자료: 한국벤처투자(2022)

본고에서는 콘텐츠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IP·이야기(Story) 기반 글로컬라이제이션과 시스템 기반 글로컬라이제이션으로 분류하고 이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는지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2. IP·이야기(Story) 기반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

콘텐츠의 대상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IP·이야기와 같은 핵심 요소는 유지하면서 현지 시장을 고려한 전략들이 다양하게 고안되고 있다. 동일한 콘텐츠에 대해서도 생활하는 지역이나 문화권에 따라 소비자들이 상이한 평가를 내릴 수 있으며, 접하는 정서와 재미 등에서도 차이가 발생한다. 즉 특정 문화권의 문화 상품이 다른 문화권으로 진입했을 때 언어나 사고방식 등의 문화적인 차이로 제대로 의미가 전달되지 않아 문화 상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인 문화적 할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줄이면서도 현지 시장에 거부감 없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소극적인 글로컬라이제이션 사례는 리메이크나 포맷 수출 등 IP 판매 방식이다. K-드라마의 리메이크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2015년 방영된 <그녀는 예뻤다>는 2016년 터키, 2017년 중국, 2018년 인도, 2019년 베트남, 2021년 일본과 태국, 2022년 말레이시아 등 다수 국가에서 리메이크되었다. 몇몇 국가에서는 출연자의 의상까지 비슷할 정도로 싱크로율에 집중하였고, 몇몇 국가에서는 많은 에피소드에 변형을 주어 현지 이해를 높이기도 하였다. 2015년에 방영된 드라마가 2022년에도 리메이크되는 걸 보면, 스토리의 탄탄함은 시대를 넘어서는 것 같다. 2013년에 한국에서 방영된 <굿 닥터>는 스토리의 우수성으로 미국에서까지 리메이크되어 화제가 된 드라마이다.

그림3 리메이크, 포맷 수출 사례: <굿닥터>, <복면가왕>, <아빠! 어디가?>
<굿닥터> 포스터
<복면가왕> 포스터
<아빠! 어디가?> 포스터

자료: PD 저널(2023.06.05.), 서울경제(2019.09.25.), 나우뉴스(2013.10.22.)

2017년 한국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프라임타임 시간대에 리메이크되어 화제가 되었으며, 현재 시즌 7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포맷 진출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했는데 2013년에 연예인 아빠와 어린 자녀들이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인 MBC의 <아빠! 어디가?>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자, 중국에서 정식으로 이 프로그램 포맷을 수입하여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인 <파파거나아(爸爸去哪儿)>를 제작하였다. 시즌1부터 시즌3까지 후난TV에서 방영되었으며, 극장판으로도 제작되어 크게 히트하였다. MBC에 따르면 <복면가왕> 프로그램은 세계 54개국에 포맷이 수출되어 자체적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2023년 9월 시즌 10이 방영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더해, 같은 장르의 IP 판매뿐 아니라, 웹툰 IP가 해외에 판매되어 영상화되는 타 장르 IP 진출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인기 웹툰 <너클걸>을 영상화한 일본 영화가 2023년 11월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전 세계 240여 개국에서 동시 공개되었다. 영화 너클걸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 크로스픽쳐스와 아마존 스튜디오가 공동 제작하고, 한국인 감독·작가와 일본 배우가 참여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그림4 웹툰 IP를 기반으로 한국 감독과 작가가 참여한 일본 영화 <너클걸>
영화 <너클걸> 이미지

자료: 조선비즈(2023.11.01.)

이 외에도 카카오엔터 플랫폼에서 연재된 웹소설·웹툰 <호형호제>를 원작으로 한 태국 드라마가 글로벌 OTT '아이치이'(iQIYI)를 통해 동남아 지역을 비롯한 180여 개국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카카오웹툰에서 연재됐던 <아쿠아맨>도 2025년에 후지TV와 해당 방송사 자체 OTT 플랫폼인 FOD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카카오·네이버웹툰에 따르면 오리지널 IP가 해외에서 영상으로 확장된 사례는 최근 공개되거나 공개 예정인 작품 기준으로 12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단순 리메이크나 포맷 수출과 같은 IP 판매는 해당 IP 수익 외에는 확장성이 낮고, 현지 제작 역량이 낮을 경우 콘텐츠 본연의 오리지널러티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이러한 부분에서 <설국열차>와 같은 적극적인 글로컬라이제이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설국열차>는 한국의 투자사와 배급사의 지원으로 한국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자들이 주로 참여한 영화이지만, PD로 로버트 버나키가 공동 참여하고 송강호 외에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다수 참여한 콘텐츠였다. 로케이션 촬영 자체도 체코 바란도프 스튜디오에서 촬영되고 VFX와 믹싱 등 포스트 프로덕션도 미국 회사들이 참여하면서 국내의 이야기 오리지널러티에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 색체가 조화를 이루면서 해외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림5 현지 배우, PD, 포스트 프로덕션을 활용한 글로컬라이제이션 사례 <설국열차>
영화 <설국열차> 포스터

자료: 네이버 영화, 조선일보(2013.08.03.)

3. 시스템 기반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

최근 들어 완성 IP 판매를 통해 해외 유통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을 타겟으로 해외에서 직접 협업하며 기획 개발 단계부터 제작에 관여하는 시스템적 해외 진출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의 영상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미국 현지에 법인들을 설립하며 제작사가 국내의 영상 제작 시스템을 수출하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해외 법인 투자와 관리를 담당하는 스튜디오드래곤 인베스트먼트(Studio Dragon Investments, LLC)와 더불어 방송 프로그램 제작 및 공급업을 주로 하는 스튜디오드래곤 프로덕션(Studio Dragon Productions, LLC)과 스튜디오드래곤 인터내셔널(Studio Dragon International, INC.)을 차례로 설립했다. 여기에 더해, <터미네이터>, <미션 임파서블> 등으로 유명한 미국 제작사 '스카이댄스'와 콘텐츠 공동 제작 및 투자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미국 TV 시리즈의 공동 기획·개발에 적극 나섰다. 이들은 기존 IP 판매와 더불어 현지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즉 국내에서 축적한 영상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활용해 현지 작가와 현지 배우들을 섭외, 콘텐츠를 제작하고 현지 시장에 공개하는 형태를 만들어 현지 제작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그 첫 결실로 맺어진 콘텐츠가 2023년 애플TV+에서 전 세계에 공개된 TV 시리즈 '더 빅 도어 프라이즈'(The Big Door Prize)다.

그림6 현지 제작을 시도한 '더 빅 도어 프라이즈'
현지 제작을 시도한 '더 빅 도어 프라이즈' 이미지

자료: 테크M(2023.04.06.)

'더 빅 도어 프라이즈'는 스튜디오드래곤이 만든 첫 미국 드라마로 동명의 미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10부작, 제작비 500억 원이 투입된 콘텐츠이다. 제작사가 IP 일부만 보유하는 조건으로 당장 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현지 제작을 직접 수주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한편, 시스템을 기반으로 글로컬라이제이션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야는 음악 산업이다. 한국 음악인 K-POP에서는 이러한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해외 멤버를 한국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통해 성장시켜 새 아이돌 그룹에 참여시키는 형태이다. 이를 통해 그룹 내 중국이나 일본, 태국 멤버들이 한국 시장에서 신비감과 색다른 매력을 보였으며, 해외 현지에서는 소통과 친밀감 형성에 기여하며 지역 마케팅에서 큰 힘을 발휘하였다.

그림7 SM엔터테인먼트 <NCT>의 멤버별 프로필과 국적
SM엔터테인먼트 <NCT>의 멤버별 프로필과 국적 이미지

자료: SM엔터테인먼트

외국인 멤버는 K-POP의 혼종성과 초국가성을 표현하면서 K-POP 장르 규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한류의 글로벌화에 따라 전체 멤버 중 한두 명에 불과하던 외국인 멤버들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여자)아이들> 멤버의 절반이 외국인이며, 총 27명인 <NCT>는 한국인 멤버 12명에 외국인 멤버는 15명에 달하며, YG에서 데뷔할 예정인 <베이비 몬스터>도 7명 중 4명이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이보다 더 진화한 방식의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룹을 전략 시장 현지 국가 멤버만으로 구성하고 기획과 트레이닝을 국내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여자 아이돌 <니쥬(NiziU)>는 JYP엔터테인먼트와 소니 뮤직 재팬이 공동 기획한 오디션 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Nizi Project)>를 통해 일본인 멤버 9명을 선발하여 그룹을 구성하였다. 멤버 중 몇몇은 JYP, YG 연습생 출신으로 한국에서 춤과 댄스를 배우고 있었으나, 또 다른 몇몇은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이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으나, 멤버 전원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으며 활동이 없을 때에는 모두가 한국 숙소에 거주하면서 트레이닝과 앨범 준비를 하는 등 여느 K-POP 그룹과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JYP 엔터는 여자 아이돌에 이어 보이 그룹 발굴을 위한 <니지 프로젝트 시즌2>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한편, 국내 대형 기획사 하이브도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게펜레코드와 함께 걸그룹 제작에 들어갔다.

그림8 JYP의 <니지프로젝트 시즌2>와 하이브의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
&JYP의 <니지프로젝트 시즌2> 이미지
하이브의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 이미지

자료: JYP, 하이브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라는 프로젝트로, 2년여 동안 세계 각국에서 지원한 참가자 12만 명 가운데 발탁된 연습생 20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 세계인이 쓰는 유튜브, 틱톡, 위버스 등 SNS 채널을 통해 오디션 장면을 공개하는 등 차별화된 전개 방식으로 많은 화제를 얻고 있으며, 최종 발탁된 이들은 팝 중심인 미국 본토 시장을 비롯해 글로벌 무대를 대상으로 활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웹툰에서도 이러한 시스템 기반 글로컬라이제이션은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형 디지털 만화 플랫폼 웹툰은 국내 작가 작품만으로는 현지 시장 진출의 한계를 느끼고 현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대표적으로 네이버 웹툰은 국내에서 성공한 '도전 만화가' 모델을 해외에서도 그대로 적용하여 현지 아마추어 작가가 온라인 플랫폼에 자신의 만화를 올리고 독자 반응에 따라 정식 연재되는 프로그램인 CANVAS를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현지 작가 발굴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네이버 웹툰 CANVAS에서 발굴한 작가인 레이첼 스마이스의 <로어 올림푸스>는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의 플랫폼에서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었으며, 하비상, 아이너스상, 링고상 등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만화 시상식에서 모두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림9 네이버웹툰의 CANVAS 사이트와 2022년 링고상 수상작 <로어 올림푸스>
네이버웹툰의 CANVAS 사이트 이미지
2022년 링고상 수상작 <로어 올림푸스> 이미지

자료: 네이버웹툰 영어 홈페이지, 링고상 트위터 페이지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현지 웹소설 IP'를 활용하여 웹툰 콘텐츠를 만드는 모델도 시도 중이다. 사실, 국내 웹툰 산업에서는 전문 인력이 이야기 경쟁력이 있는 웹소설 IP를 웹툰 문법에 맞도록 각색하고 콘티를 짠다. 그리고 이러한 효율적인 공정으로 웹툰 콘텐츠를 제작하는 '노블 코믹스'가 시장에 정착하였다. 이제 이 모델을 해외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네이버웹툰 영어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Chasing Red'는 CANVAS 출신 웹툰 작가 Silent Maru가 북미 대표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의 웹소설 작가인 Isabelle Ronin과 협업해 연재하는 것이다. Isabelle Ronin의 웹소설 콘텐츠는 왓패드 내에서 2억 6천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며, 'Chasing Red'는 8개 언어로 출판되고 있는 유명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이 2021년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한 것도 이러한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림10 네이버웹툰 영어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Chasing Red'
Chasing Red 이미지

자료: 네이버웹툰 영어 홈페이지

4. 마치며: 어디까지가 K-콘텐츠이며, 우리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유통의 단일 시장화, 글로벌 소비자들의 높아진 세계화와 현지화 동시 추구 요구는 계속해서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 진화를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면에서 급변하는 환경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K-콘텐츠는 향후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콘텐츠 시장의 국가별 분류가 희석되고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더욱더 정교해지는 과정에서 콘텐츠의 국적이 불분명해질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여 미국 현지에서 제작한 스튜디오드래곤 인터내셔널의 콘텐츠를 K-콘텐츠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나 해당 콘텐츠를 통한 수익을 한국 콘텐츠 수출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답하기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이 없고, 곡도 제작자를 통해 만들고, 활동 역시 현지에서 주로 하는 아이돌 그룹을 K-POP 그룹으로 분류하는 데에도 애매함이 존재한다. 즉, 어디까지가 K-콘텐츠라고 부를 수 있을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소비자 혼란 수준을 넘어 조세나 계약과 같은 실제 국제 법·제도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을 동반한다. 이전까지 구글세, 망 중립성, IP 공정거래 이슈 등으로 일어난 시행착오를 되돌아보았을 때, 새로운 형태의 해외 진출과 거래 또한 다양한 이슈를 촉발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글로벌 협업과 콘텐츠 제작 양상을 연구하고 유형 분류를 진행하여 향후 분쟁 여지가 높은 이슈들을 정리하는 등 선제적인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점차 콘텐츠의 제작, 유통, 소비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 협업을 거치며 콘텐츠의 글로벌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이 형성되는 변화에 대응하여,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는 정책 금융에서의 해외 투자 영역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시점이다.

참고문헌